지상으로 비스듬히 드리워진 키 큰 그림자가 아무렇게나 누워 잠든 소년의 파리한 얼굴 위에 드러누웠다. 둥그런 이마의 굴곡을 타고 땀 한 방울이 또르륵, 땅 위로 굴러 떨어졌다. 초여름의 시간을 모질게도 달구던 동녘의 태양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서편으로 스러지는 때였다. 주홍빛 꽃처럼 피어나던 노을도 진한 쪽빛으로 물들었다. 천지에 가득한 밤의 기운을 느낀...
까만 머리의 소년은 삭풍이 부는 언덕 위에 드러누워 세상을 덮은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위가 앙상한 등을 아프게 지탱하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문득 서편 하늘에서 하얗게 빛나던 별 하나가 눈물방울처럼 가물거리며 지상 위로 떨어졌다. 아. 가늘게 탄성을 지른 소년은 일어나 앉아 경건히 합장했다. 오감을 통해 미세하게 느껴지는 하늘과 대지로부터의 파...
세계의 모든 이들은 그를 일컬어 빛이 잉태하고 빚어 빛으로부터 태어난 이라 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자였다. 그가 사는 세상은 신의 세상,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신에 가장 가까운 신성의 존재, 용(龍)이었다. 그 뿐이던가. 그는 귀한 자들 중의 귀한 자, 용왕이었다. 생명과 빛의 통치자인 청룡의 왕이 그를 낳고, 바람을 지배하는 백룡이 왕이 그를 키...
반백년 치욕의 왜정(倭政)에서 벗어나 대한제국의 주권을 복구하고 새 시대의 터를 잡은 국부 익종(益宗) 태황제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지식은 삶의 원천이고, 지혜는 나라의 기둥이다. 이에 반만년을 면면히 이어 온 자랑스러운 대한의 얼을 담아, 이곳에 새 배움의 터를 세우니. 제국의 모든 이가 와서 익히고 힘써 배우도록 하라. 황립 혜원(慧源) 대학교...
여의도에 위치한 20층짜리 빌딩 청명루(靑明樓)는 현 황제가 15년 전 황태자로 책봉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제 6번째 궁이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였을 뿐 아니라 5년이라는 긴 시간까지 투자하여 지은 청명루는 이제 명실 공히 서울의 명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황실 박물관과 도서관을 비롯하여 궁인 전용 여가 시설, 전문적인 행정 시설,...
빗장을 질러 굳게 닫아 놓은 열두 개의 창문 틈새로 동풍(凍風)이 불어 왔다. 이번 겨울은 예년과는 달리 포근했고 시시때때로 아기 주먹만큼 큰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눈은 풍년의 조짐이라 하여 많은 이들이 기꺼워했다. 이것이 모두 황제의 인품에 하늘이 감복하여 복을 준 것이라 하였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그는 몸을 뒤척였다. 간밤 그는 잠을 자지 않았다...
그 해의 겨울은 더더욱 차갑고 더더욱 빠르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아무리 큰 꿈을 가진 자라 하여도 그 흐름에 올라타 주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잡고자 했으나 아직은 머나 먼 신기루 속의 섬에 불과했다. 백 방울의 눈물과 땀, 가득 고여 흐르는 상처의 피 얼마 정도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마마. 태위 대감 드셨습니다.” 빛이 바래어 누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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